◽소제목 모두 달기
◽핵심 문장들 인용해두기
◽이 중 딱 세가지만 꼽아서 에세이 한 편 쓰기
Quotation
시
1. (p.18) 한 편의 시에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꿈꾸지도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분명히 있다.
2. (p.18) 시를 쓰는 일은 세상을 두루 공부하는 일이다. 습작習作이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연습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부단히 배우고 익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3. (p.12) 시인은 일상이라는 유리그릇을 박살내는 자가 아니다. 유리그릇에 다만 빗금을 긋는 자임을 명심하라.
4. (p.24)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에서 또 하나 주의 깊게 볼 것은 "자신의 작품으로부터 배워나가며 발전한다"는 대목이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 혹은 '시를 창작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그 창작물을 통해 변화 · 발전하는 존재이다. 한 편의 시는 독자들을 감응시킬 뿐만 아니라 창작자 자신에게도 틀림없이 좋은 공부거리가 된다. 좋은 시든 나쁜 시든 '이미' 창작한 한 편의 시에는 '앞으로' 창작할 시의 방향과 원리가 다 들어 있다. 또한 어렴풋하게나마 시인이 살아가면서 지향해야 할 삶의 지침까지 들어 있다.
5. (p.74-75) 시가 서 있어야 할 자리
일체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야 깨달음에 이르듯 시로 접어드는 길도 그러한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는 절대자와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치는 양식이 절대 아니다. 시의 초보자일수록 '무엇을 위해서' 쓰려고 한다. 또 '누구를 위해서' 쓰려고 한다. 시가 천박해지는 순간이다.
그 무엇을 위해서도 쓰지 말고, 그 누구를 위해서도 쓰지 말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예수를 만나면 예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아내를 만나면 아내를 죽여라. 부처를 우러르면 불경을 읽으면서 절을 하면 될 것이요, 예수를 믿으면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를 하면 된다. 부모를 공경하면 지극히 효도를 다하면 될 것이요, 아내를 사랑하면 한 번 더 껴안아주면 그만이다. 시에다가는 단 한 줄도 절대자의 말씀을 받아 적지 마라. 제발 부모의 자애로움을 칭송하지 말 것이며, 금실 좋은 아내와의 관계를 떠벌리지 마라.
그래도 부처와 예수와 아내를 시에다 쓰고 싶어 못 견디겠으면 어떻게 하나? 부처의 말씀을 관념의 테두리 안에 가둬버리고 실천할 줄 모르는 자들에 대해 써라. 예수를 팔아 제 잇속을 챙기는 자들을 크게 꾸짖는 시를 써라. 부모의 비겁함과 치부와 죄를 찾아 써라. 아내의 쩨쩨함과 실수와 과욕에 대해 써라.
6. (p.76) 시인이 서 있어야 할 자리
시인은 이렇듯 절정에서 조금쯤 옆으로 비껴서 있어야 하는 자이다. 종교가 진리의 절정에 도달한 정신의 영역이라면 문학은 진리의 위기를 포착하는 풍향계여야 한다. 종교와 문학이 손쉽게 화해하면 둘 다 망한다. 시는 종교를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되며,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시의 마음은 종교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함께 가되, 시의 몸은 종교가 가리키는 방향의 반대쪽을 향해 서 있어야 한다. 그 어기장, 그 버티는 안간힘, 그 불화의 순간에 가까스로, 시는 태어난다.
7. (p.81) 사랑의 표현
누군가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시는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의 사랑을 노래하면 다 좋은 시가 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글쎄, 하면서 고개를 흔들 것이다. 또 누군가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사람을 지독하게 사랑하면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서 한마디 보탤 것이다. 사랑에 대해서 쓰려면 '사랑'이라는 말을 시에다 쓰지 말아야 한다고, 제목으로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사랑'이라는 말을 아예 잊어버려야 한다고 훈수를 할 것이다.
영감
1. (p.36) "영감이 오는 순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첫 생각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동안 당신이 겪어온 감정과 사건과 정보가 밑바탕이 되어 발산되는 것이기에 엄청난 에너지에 물들어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이다.
2. (p.41)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그 반복의 지겨움을 깨우치지 못하고 그 반복이 진리하고 믿는 게 상투성의 원리다. "기계적인 우리들의 삶 속에 파묻혀있는 세계를 관찰하고 느끼고 그것을 언어로 드러내는 일"을 오규원은 '미적 인식'이라는 말로 명쾌하게 정리한 바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재라고 하더라도 시인의 미적 인식에 의해 재발견되지 않으면 그것은 시라고 할 수가 없으며 죽은 인식의 되풀이에 불과하다. 죽은 인식은 죽은 언어를 불러온다. 시인의 가장 큰 임무 중의 하나는 죽은 언어를 구별하여 과감히 버리고 살아 있는 언어와 사투를 벌이는 일이다.
3. (p.45) 당신이 늘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소소한 것에서부터 삶의 기미를 포착하고 파악하는 습관을 길러라. 사물을 반듯하게 보지 말고 거꾸로 보라. 세상을 걸어 다니면서 보지 말고 때로는 물구나무를 서서 바라보라. 지금부터는 진실이라고 믿고 있던 것들을 의심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던 것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을 선언하라.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한 순간도 미적 인식에 다다를 수 없게 된다.
시작법
1. (p.263-264) 강은교 시인은 첫째, 장식 없는 시를 쓰라고 한다.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으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고 한다.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시적 경험이라는 것은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쓸 때 발현된다는 것. 셋째,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며 시작에 대해 믿음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넷째,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으므로 늘 세상을 감동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다섯째, 자유로운 정신_{nomade}을 가질 것을 당부한다. 정신의 무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에서 예술의 힘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여섯째,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익히라고 제안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 것, 무엇보다 많이 쓰고 또 그만큼 많이 지우라고 한다. 끝으로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한다고 매우 이색적인 의견을 제출한다. 즉 시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
2. (p.265-266) 최영철 시인은 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느낌'이므로 이런 느낌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마음속으로 되새겨보는 게 시창작의 첫 단계라고 한다. 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면 속으로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번 중얼거려 보라고, 그 다음 단계는, 바람이 어떻게 시원한지를 느껴보라고 한다. "막혔던 가슴속 응어리를 뚫어 주듯이 시원하다" "바람에 실려 그리운 사람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다"처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들 모두에게 어떤 느낌을 가지려고 노력하다가 보면 그것들에게 새로운 가치와 생명을 부여하는 시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글을 남과 다르게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라고 권한다. 그 또한 자신감으 강조한다. 글감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주변에서부터 찾을 것이며, 자신의 부끄럽고 추한 부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ㅇ벗이 치미는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도 숨김없이 보여주어야 독자는 흥미와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다. 좀 비정상적이다 싶을 정도로 잡념이 많은 것도 괜찮은 일이며, 연속극이나 신문기사 한 줄에도 쉽게 눈시울을 적시는 사람이 오히려 시를 쓸 자격이 있다고 등을 두드린다. 대상을 향한 열린 시각, 치우침 없는 균형 감각, 부분을 보더라도 전체 속에서의 관계를 조망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를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앞세운다.
3. (p.267-268) 장옥관 시인은 시적 발상을 획득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일상생활 속에서 다가오는 수많은 느낌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붙잡아야 감수성 훈련이 된다. 둘째, 사물들이 항복을 할 때까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집중적으로 마음의 눈을 열어야 한다. 셋째, 어린아이의 눈처럼 사물과 현상을 난생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상상력이 커진다. 나의 관점을 버리고 대상의 눈으로 나를 보라는 것. 넷째, 자신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섯째, 가까운 곳에서 시를 찾는 눈이다. 실제로 장옥관 시인이 시로 형상화하는 소재는 대단히 특별한 것들이 아니다.이를테면 벚꽃 아래로 지나가는 개, 자신이 누는 오줌, 포도를 껍질째 먹는 일, 아스팔트에서 본 죽은 새, 옛 애인에게서 걸려온 보험 들어달라는 전화······. 그러나 이것들이 시인의 눈에 포착되면 경이로운 존재의 실감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빛을 뿜는다.
4. (p.23-24)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문학적 재능에 대해 회의하거나 한탄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것은 자신의 게으름을 인정한다는 것과 같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라는 책에서는 예술가란 자신의 작업을 지속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 즉 중지하지 않는 법을 배운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예술 창조에 대한 지속성이 곧 예술적 재능이라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이 가진 재능이 얼마나 되는지 걱정하는 것보다 더 쓸모없고 흔한 에너지 소모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즉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나가지 않으면 눈부신 천성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5. (p.51)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라.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소재를 택해 쓰느냐는 게 아니다. 그 어떤 소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았느냐는 것이다. 모든 시인은 경험한 것에 대하여 쓴다. 하지만 경험한 것을 곧이곧대로 쓰지 않는다. '무엇'을 쓰려고 집착하지 말라. '무엇'을 쓰려고 1시간을 끙끙댈 게 아니라 단 10분이라도 '어떻게' 풍경과 사물을 바라볼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6. (p.52-58) 본 것, 가까운 것, 작은 것, 하찮은 것
첫째,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써라.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책을 읽어서 알게 된 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경험에 속한다. 하지만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직접적인 경험만큼 생생하지는 않다. 남의 입을 통해 빠져나온 말을 받아 적다보면 사실을 과장하거나 축소하게 될 우려가 있고, 책으로 얻는 지식과 지혜를 말로 적다보면 현학이나 지적 허영의 늪에 빠질 수 있다. ...
둘째,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써라. ... "간혹 쓸 것이 없어서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지금 전화를 하는 곳에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것을 말해보라고 한다. 그걸 쓰라고 한다. 곁에 있는 것부터 마음속에 데리고 살라고 한다. 단언컨대, 좋은 시는 자신의 울타리 안 문지방 너머에 있지 않다. 문지방에 켜켜이 쌓인 식구들의 손때와 그 손때에 가려진 나이테며 옹이를 읽지 못한다면 어찌 문 밖 사람들의 애환과 세상의 한숨을 그려낼 수 있겠는가." ... "오래 들여다보면 모두 시가 된다" ...
셋째, 큰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써라. 높은 곳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쓰지 말고, 낮은 곳에서 돌아앉아 우는 것에 대해 써라. 시는 절대로 '초월한 자의 향기'가 아니다. '고귀한 사랑'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 아니다. '고행을 이겨낸 구도자의 경지'가 아니다. 시는 초월하지 못한 인간의 발가락에서 나는 냄새고, 지저분한 사랑이며, 인간과 자연의 불화이며, 한 시간 아르바이트하면서 어렵게 번 돈 3천원이다. 당신도 최영미처럼 "나는 내 시에서/돈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詩>)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하나, 시를 쓰려거든 두꺼운 문학이론서 독파에 연연하지 말라. 창작보다 고매한 철학적 사유로 무장하는 게 우선이라고 여기지 말라. 이론이나 세계관이 시를 낳는 게 아니다. 당신의 시가 당신의 이론과 세계관을 형성한다고 믿어라. "사유가 먼저 있고, 그 도달한 사유에 맞춰 거꾸로 체험을 구성할 경우 작품은 파탄을 면치 못한다. 사유로부터 경험이 도출되는 것은 마치 몸에 옷을 맞추지 않고 옷에 몸을 맞춘 것처럼 어색하다. 몸에 옷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규범이듯, 경험에 사유가 뒤쫓아 가 그 경험을 완전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예술적 창조의 원리이다."
넷째, 화려한 것이 아니라 하찮은 것을 써라. 나의 경험 중에 행복했던 시간들이 남에게도 반드시 행복한 시간으로 전이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행복과 충족은 남의 불행과 결핍의 증거임을 잊지 말라. 장미와 백합의 우아한 향기에 취하지 말고, 저 들판의 민들레와 제비꽃의 무취에 취하라. 금메달을 목에 건 승리자의 영광보다는 꼴찌로 돌아오는 선수의 실패를 경배하라. 성형수술 한 처녀의 얼굴을 경멸하고 주근깨로 뒤덮인 소녀의 얼굴을 사랑하는 법을 익혀라. ... 당신의 상처와 흉터와 광기와 결핍과 불행에 주목하라. 시를 쓰는 동안은 당신이 받은 훈장과 상장을 반납하고, 행운과 행복과 영광을 외면하라. 당신이 자랑하고 싶은 것들과는 이별하고,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것들과 손잡고 결혼하라. 당신이 두고두고 치욕스럽게 여기는 것, 감춰 두고 싶은 것, 그래, 그것을 꺼내 써라.
7. (p.60-61)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여기 시의 소재로서 한 알의 사과가 있다. 당신에게 이 한 알의 사과에 대해 시를 쓰라는 과제가 떨어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적어도 다음에 제시하는 열 가지 정도의 행동을 수행하거나 사유를 움직여야 한다.
1) 사과를 오래 바라보는 일
2) 사과의 그림자를 관찰하는 일
3) 사과를 담은 접시를 함께 바라보는 일
4) 사과를 이리저리 만져보고 뒤집어보는 일
5) 사과를 한입 베어 물어보는 일
6) 사과에 스민 햇볕을 상상하는 일
7) 사과를 기르고 딴 사람과 과수원을 생각하는 일
8) 사과가 내 앞에 오기까지의 길을 되짚어 보는 일
9) 사과를 비롯한 모든 열매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일
10) 사과를 완전하게 잊어버리는 일
이렇게라도 해야 당신은 비로소 시의 첫 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8. (p.83)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적막을 사랑하라. 적막에 사로잡힌 적막의 포로가 되라. 적막 속에서 빈둥거리다가 보면 문득 소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세상의 소란 속으로 단번에 뛰어들지 말고, 가능하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라. 그러다보면 시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9. (p.87)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
#슬럼프
시를 쓰다가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해결하나 물어보지 마라. 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슬럼프인 것이니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별도의 슬럼프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정말 시를 쓰고 싶거든 슬럼프마저 사랑하고 즐길 도리밖에 없다. 스스로 슬럼프에 빠졌다고 생각되거든 승용차를 버리고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라.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이곳저곳 일없이 기웃거려라. 바다로 가거든 휴대전화를 물 속에다 던져버려라. 저녁이 찾아오면 전등을 켜지 말고 어둠 속에서 어둠과 한 몸이 되어보라.
10. (p.94) 고백 · 감상 · 현학
시가 고백적 양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게 세 가지가 있다. 당신은 시를 쓰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이것들을 과감하게 배척해야 한다.
첫 번째는 과장이다. 제발 시를 쓸 때만 그리운 척하지 마라. 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 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하지 마라. 모든 것을 낭만으로 색칠하지 마라. 그런 것들은 우습다.
두 번째는 감상感傷이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마라.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 눈물 흘릴 일 하나 없는데 질질 짜지 마라. 그런 것은 역겹다.
세 번째는 현학이다. 무엇이든 다 아는 척, 유식한 척하지 마라. 철학과 종교와 사상을 들먹이지 마라. 기이한 시어를 주워와 자랑하지 마라. 시에다 제발 각주 좀 달지 마라. 그런 것들은 느끼하다.
오규원은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라고 했다. 자신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일기에 쓰면 된다. 특정한 상대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싶으면 편지에 쓰면 그만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11. (p.95-98) 묘사의 힘
#묘사#이미지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해준다"고 눈에 번쩍 뜨이는 말을 해준 이는 연암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시인의 받아 적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감정을 언어화하는 이 과정을 '묘사'라고 하낟. 그러니까 묘사란 감정의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 시인이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고 한다.
...
어떤 시가 언어예술로서의 기본적인 꼴을 갖추었는가의 여부도 묘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묘사 능력으로 시의 품격을 판단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묘사는 시를 습작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 내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드러내면 시가 추해진다. 내 마음을 최대한 정성을 들여 그려서 보여주기, 그게 시다.
...
시에서 묘사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대상을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묘사의 생생함이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묘사는 시의 화자인 '나'를 객관화하는 데 기여하는 형상화 방식이므로 묘사를 통해 대상과 시적 화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
12. (p.101-105) 묘사는 관찰로부터
나는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단순히 그 음식의 냄새를 맡고 혀로 맛보는 것으로 음식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그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곰곰 따져본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모르면 음식점 주인의 옷자락을 잡고 물어본다. 그리고 음식의 재료가 어떤 순서로 조리되었는지 생각해본다. 즉 음식을 나름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이 음식을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찰한 것을 잘 기억해야만 음식을 원래의 맛에 가깝게 재생할 수 있다. 시란 내가 먹어 본 맛난 음식, 내가 바라본 멋진 풍경을 언어로 재현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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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시의 중요한 질료가 된다. 삼겹살을 구울 때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며 젓가락만 들고 있는 사람은 삼겹살의 맛과 냄새만 기억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고기를 불판 위에 얹고, 타지 않게 뒤집고, 가스레인지의 불꽃을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은 더 많은 경험을 한 덕분에 더 많은 기억을 소유하게 된다. 그런 사람이 시인이다. 그러니 삼겹살을 먹게 되거든 제발 고기 좀 뒤집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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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묘사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냄새는 오로지 묘사를 통해서만 언어로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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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가만히 들어보라. 장미 꽃잎이 열릴 때 나는 소리, 단풍이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소리······. 그리고 상상해보라. 감나무에서 우는 매미소리가 내 귓가에 닿기까지의 길, 나비가 날개를 너울거리며 날아가는 허공의 길 ······. 그것들을 언어의 연필로 그리는 게 묘사다.
또한 묘사는 개념을 해체한다. 밤은 어둡다. 여름은 덥다, 꽃은 아름답다, 개나리는 노랗다와 같은 문장은 고정관념이 만든 개념적 표현이다. 묘사는 개념을 구체화하거나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면 "시장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많다"고 쓰면 죽은 문장이다. "가락시장에는 배추, 시금치, 상추가 많다"고 쓰기 시작해야 문장에 조금이라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13. (p.113-114,117) 시적 허구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화자라고 한다. ... 습작기에 있는 사람일수록 시인과 화자를 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 시를 쓰는 시인은 화자를 통해 말해야지 스스로 시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 그러면 시가 시인의 고백, 즉 사적인 발언으로 전락하고 만다.
... 모든 시가 허구가 아니라면 시가 예술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 받을 수가 없다. 신변잡기 같은 사사로운 글을 문학의 범주 안에 수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는 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바탕 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의 사소한 체험은 작품 속에서 치밀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시적 허구'라고 부른다.
오규원의 말대로 "시 속의 '나'는 현실 속의 '나'가 아니다. 시 속의 '나'는 허구 속의 존재이며, 어디까지나 창조적 공간인 작품 속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 '나'는 객관화된 '나'이며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어떤 국면 속의 형식화된 인간으로서의 '나'이다. 따라서 일상의 경험을 시로 표현할 때는 일상 속의 '나'가 아닌, 구체적 경험 속의 '나'를 그리는 시인의 형상적 시각이 필요하다. 시인은 현실 속의 '나'를 죽이고 구체적 경험 속의 또 다른 '나'를 살려 형상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 신은 '사실'을 만들고 인간은 '진실'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는 말이다.
어떠한 진실을 그리기 위해 시인은 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첨삭할 수 있다. 사실과 상상, 혹은 실제와 가공 사이로 난 그 조붓한 길이 바로 시적 허구다. 이 시적 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 속에 갇혀 있으면 시인은 숨을 내쉴 수도 없고, 상상의 나라에 가지 못한다. 물론 진실을 노래할 기력도 사라진다. 그의 시는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게 된다. (그날 있었던 사실만 쓰려는 아이는 일기에 쓸 게 없다고 투덜거리거나 쩔쩔매기 일쑤다.)
...
... 시적 허구는 역사적 사실보다 생동감 있는 진실을 보여주므로.
퇴고
1. (p.231) 박제천은 시를 써내자마자 그 자리에서 달려들어 퇴고를 하는 일은 어리석다고 조언한다. 작품을 써내고 난 뒤에는 일단 눈앞에서 치우고 일주일이나 열흘쯤 묵힌 채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다시 꺼내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길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완성
1. (p.275-276) 시인이여, 누군가 당신 시의 결점을 지적하면 겸손하게 귀를 열고 가만히 들을 일이다. 얼토당토 않는 비판이라도, 돼먹지 못한 소리라도, 개 풀 뜯어먹는 소리라 해도 달게 들어야 한다. 독자가 당신의 시를 오독한다고 독자를 가르치려고 대들지 말 것이며, 제발 어느 날짜에 쓴 시라고 시의 끝에다 적어 두지 마라. 당신에게는 그 시를 완성한 날이 대단한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독자는 그따위를 알려고 당신의 시를 읽지 않는다. 당신이 완성했다는 그 시는 당신의 마음속에서 완성된 것일 뿐, 독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언제든지 변화하고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당신의 이름을 지우고 보더라도 분명히 당신의 시임을 알게 하는 게 최선임을 앚지 말라.
1. 한 줄을 쓰기 전에 백 줄을 읽어라 2. 재능을 믿지 말고 자신의 열정을 믿어라 3. 시마詩魔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4. 익숙하고 편한 것들과는 결별하라 5. '무엇'을 쓰려고 하지 말라 6. 지독히 짝사랑하는 시인을 구하라 7. 부처와 예수와 부모와 아내를 죽여라 8.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9.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10. 제발 삼겹살 좀 뒤집어라 11. 체험을 재구성하라 22. 한 편의 시가 완성되기까지 23. 시를 쓰지 말고 시적인 것을 써라 24. 개념적인 언어를 해체하라 25. 경이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26. 시를 완성했거든 시로부터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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