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는 글
Part 1. 학부과정 연구원이 된 과정과 그 결과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연구주제를 정하는 거였습니다. 그 당시 제가 관심 있었던 분야는 3D 디스플레이였어요. 그중 홀로그래피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코로나 기간 동안의 경험 때문이었어요. 저는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2020년에 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를 겪는 2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는 동기끼리 얼굴 한 번 보기 어려웠어요. 대안으로 인터넷을 통해 비대면으로 만났지만 피상적인 공간감 속에서 정서적 갈피들을 못 잡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의 선명한 화질이나 디스플레이의 넓은 종횡비 및 많은 화소 수가 아닌 실감의 기술이라 생각했어요. 앞으로 펼쳐질 비대면 세상에 인간적 온기와 실제 대면하는 것 같은 상호작용을 더해줄 핵심기술이 바로 홀로그램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직사각형 시대의 막을 내리고 모바일 홀로그램, 홀로그램 TV가 우리 일상에 들어오는데 이바지하는 공학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관련 자료를 얻거나 공부하기 무척 힘들었어요. 게다가 우리 학교에는 3D 디스플레이를 연구하시는 교수님이 안 계셔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두 가지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하나는 최근 급부상한 인공지능 기술이 홀로그램 연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홀로그램 콘텐츠를 만드려면 360도 모든 방향에 대한 영상이 필요한데 카메라의 현실적인 한계로 실제 촬영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문제점이었어요. 하지만 인공지능 영상처리 기술을 활용하면 카메라 각도상 생기는 왜곡이나 비는 공간을 보정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3D 영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 학교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영상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과목을 개설하는 교수님이 계시다는 거였어요.
진로 문제로 갈팡질팡하고 있던 전 결국 현 지도교수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관심과 배려로 교수님 연구실에 학부연구생으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덕분에 저는 2022년 10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인공지능을 공부하고 연구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2023년 10월 말, 인공지능 2티어 학회에 제출한 논문이 최종 억셉되면서 국내논문 한 편, 국외논문 두 편으로 연구자로서 첫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Part 2. 13개월 동안 연구하고 논문을 쓰며 느낀 것
위의 내용까지 제가 연구실에 들어가게 된 과정과 연구실 생활을 하며 얻은 결과였어요.
지금부턴 좀 더 내밀하게 그 시간들 동안 제가 무엇을 느끼고 있었는지를 얘기해보려고 해요.
먼저 저는 조바심과 불안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앞서는 글에서도 얘기했던 것처럼 몸은 출하실을 벗어났음에도 마음은 여전히 출하실에 있었어요. 그 당시에, 연구실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결국 다시 출하실에게 일하게 될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 보니 저는 목표에만 매몰돼 과정을 몹시 괴롭게 보냈습니다. 논문 작업을 하는 동안 진척이 나지 않으면 마음이 무척 초조해졌고 진행이 잘 안 되면 쉽게 과민해졌습니다. 연구와 학부 수업을 병행하다 보니 매일 밥 먹듯 밤을 새우며 수개월을 수면부족과 소화불량을 달고 산 탓도 있지만 그 정도가 팀원들에 비해 몹시 심했어요. 회사를 다니며 매일 12시간씩 막노동을 하던 때보다 훨씬 더 정신적으로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연구를 하는데 필요한 기본 실력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어요. 고등학생 때 이과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 공학적 사고가 부족했고 프로그래밍도 학부 수업 하나 들어본 게 다 였습니다. 게다가 영어도 잘하지 못해 논문 읽는 것도 많이 버벅거렸어요. 그럼에도 욕심은 많아서 논문을 당장 쓰고 싶어 했습니다. 다시 되돌아봐도 논문 세 편을 공동 1 저자로 갖게 된 것은 우수한 팀원들의 탁월한 실력과 지도교수님의 지극한 관심과 애정 덕분이었어요. 저 혼자서라면 완주하는 것도 무척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다른 욕구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 욕구의 내용은 '언제든 내 스스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어.'였습니다. 즉, '언제든 떠오른 영감을 표현할 수 있는 상태가 되고 싶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제가 원하는 창작도구들에 대한 연습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이를 당장 연마하기엔 챙겨야 하는 학부수업들과 논문들로 이미 하루가 벅찬 상태였습니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이것에만 온전히 몰입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앞서 나오는 논문들을 지속적으로 팔로 업하고, 새로운 기술들을 공부하고, 그 속에서 개선할 점을 찾아 논문을 쓰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 학기가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연구를 한번 시작하면 다른 것들을 전혀 손 못 대게 된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Part 3. 학업을 중단하고 군복무를 다시 시작하다.
2023년 10월 중순, 무수한 난관 끝에 다행히 세 편의 논문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리고 11월이 됐을 때 24년 1월까지 다른 시험 하날 준비하게 됐어요. 덕분에 연구와 학업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고 내년을 어떻게 보낼지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 상태를 정리해 보면 크게 2가지로 요약됐어요.
먼저 휴식과 돈이 필요했습니다. 연구가 주는 큰 희열도 있지만 연구 그 자체는 만만치 않은 과정이었어요 특히 두번째 파트에서 얘기한 것처럼 제 마음이 불안정하고 어수선했고 몸도 무척 지쳐있었습니다. 휴식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시험 하날 준비하게 되면서 출하실에서 일하면서 모아 뒀던 돈을 모두 사용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장의 생활비와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남은 학부 기간 동안의 등록금과 기숙사비용을 마련해야 했어요.
그리고 글을 쓰고 그림과 멜로디를 그리는 것이 무척 하고 싶었습니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연구를 한번 시작하면 다른 것들을 새로 시작하기 어려웠습니다. 부족한 지식과 능력들을 채워야 했고 선행연구들을 따라가며 개선할 점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인공지능 분야의 경우 반년마다 트렌드가 바뀔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무척 빨랐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지금 당장 feasibility를 체크해 보고 논문을 준비해야 했어요. 시기를 놓치면 더 좋은 연구가 발표돼 우리가 준비했던 아이디어는 휴짓조각이 되었습니다. 이 말은 곧 연구를 한 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렵다는 얘기였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학업을 쉬기엔 기회비용이 무척 컸습니다. 나이도 이젠 적지 않고 남아 있는 학부 학기를 무작정 미뤄두기엔 부담이 많았어요. 이런저런 것들을 고심한 끝에 결과적으로 제게 남아 있는 군 복무 1년을 2024년에 사용하기로 정했습니다. 4급 판정을 받은 저는 군 복무를 2년가량 채워야 하는데 산업체에서 1년 채웠으니 추가로 채워야 하는 기간이 1년 남아있었습니다. 사실 이 1년은 잘 미뤄뒀다가 석사까지 마치고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박사 유학을 준비할 때 1년 정도 시간이 필요한데 이 1년을 군복무와 병행하며 보내려 했어요. 각각의 1년 모두 필요한 시간이라면 한 번에 보내는 것이 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쓰려고 했던 시간을 이번에 앞당겨오게 된 것이었어요.
이후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군복무를 앞당기게 되면 여러 이점이 많았어요. 먼저 시간적 부담이 휴학에 비해 훨씬 적었어요. 그리고 군월급을 받아 매달 꾸준히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퇴근 후 몇 시간 정도와 주말 시간을 제가 하고 싶은 것들도 할 수 있었어요.
때마침 2023년 11월 말에 대학생 대상으로 사회복무요원 모집이 있었고 저는 울산에 있는 어느 소방서에 지원해 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2023년을 잘 보낸 뒤 2024년에는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며 ① 독서 ② 작문 ③ 드로잉 ④ 영감편집 요 4가지를 중점적으로 해보려고 해요. 매주 한 편씩 글을 쓰고 꾸준히 드로잉을 연습해서 2025년부턴 매달 한 편씩 창작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그와 동시에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환경에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쌓으며 한층 더 성숙해지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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